남한은 ‘국민’, 북한은 ‘인민’, 그 불편한 이중주
[책소개]'전쟁과 인민'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성립과 인민의 탄생
김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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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과 인민> 표지/ 돌베개     © 수원시민신문
“우리 학계가 도달한 현대 한국 연구의 뚜렷한 성취”

 
 한국전쟁 발발 62주년에 발맞춰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 출간되었다. 그들은 왜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했으며 반미를 국가정책으로 내세우게 되었는가. 그리고 북한 주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인민’이라는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된 것인가.

 책은 대단히 방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이런 물음에 충실한 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도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는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연구의 객관성을 중시한 결과다.

 그동안 한국전쟁이나 북한과 관련한 책들은 적지 않게 출간되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986, 일월서각),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1999, 창비) 같은 외국 학자들의 연구를 비롯해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나남), 『한국 1950 전쟁과 평화』(2002, 나남), 김동춘의 『전쟁과 사회』(2000, 개정판 2006, 돌베개), 박태균의 『한국전쟁』(2005, 책과함께), 정병준의 『한국전쟁』(2006, 돌베개), 박찬승의 『마을로 간 한국전쟁』(2010, 돌베개) 등 국내 학자들의 연구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전쟁과 인민』처럼 북한 사람들과 북한 사회에 방점을 찍고 수행된 연구는 거의 없다.

 바로 이 점이 기존 책들과는 일정한 차별성을 지니는 부분이다. 한국전쟁에 관한 더욱 다면적이고 총체적인 이해의 노력이 확산되고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에 관한 실질적인 논의가 활발해지는 데 이 책은 의미 있는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을 이해하는 창, 사회주의 체제 성립과 한국전쟁

 저자인 한성훈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43)는 이 책에서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두 개의 주요 창으로 사회주의 체제 성립과정과 한국전쟁을 꼽고 그로부터 논의를 전개해나간다. 저자에 따르면 해방 후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한 북한에서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범위나 기준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식민지에서 광복이 된 이후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을 규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바로 과거청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선시해야 하는 기준은 계급관계였다. 필연적으로 북한 국가건설의 주역은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 계급으로 한정되었고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한 친일세력이나 지주에게는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남한과 확연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사회적·경제적 계급에 기초한 이러한 기준은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국가의 정당한 구성원으로서 자격을 부여해 북한 체제가 내세우고 지향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삼으려 했다. 이에 따라 식민지 봉건의식을 타파하고 지주와 자본가에 대한 계급투쟁이 진행되었으며, 인민들은 새로운 국가의 구성원으로 개조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이라는 전시(戰時)는 무엇보다도 군사적 전일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지배체제를 요구했다. 전시권력은 통치자의 체제유지나 새로운 재생산을 위한 헤게모니 창출 노력과 함께 미시적인 수준에서 인민정치를 확대한다. 북한에서 전쟁을 치르기 위한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과 주민학살, 피점령, 전시규율, 반혁명 상황 등은 국가와 개인의 관계, 사회변화, 주민들의 삶과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개전 초기 남한지역 대부분을 점령했던 북한은 미국이 참전한 이후 38도선 이북지역을 오히려 점령당함으로써 체제가 몰락할 위기를 겪었다.

 이 위기는 해방 이후 성취한 친일반민족자 청산과 토지개혁, 남녀평등법 시행 등 민주개혁 조치를 위협하는 반혁명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북한 정권은 주민감시와 통제, 규율을 강화하고 내부의 적과 반동분자를 처리해나갔다. 더불어 군인과 로동당(원)을 중심으로 민청과 사회단체 등을 통해 중앙권력을 말단 지방에까지 침투시키는 전일적 체제를 구축해나갔다. 이러한 변화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이데올로기와 전쟁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인민의 모습에 반영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전 상황에 더해 38도선 이북지역에 대한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민간인 학살은 인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북한 당국의 조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북한 주민들이 미국에 대해 갖는 태도와 반응 그리고 반미를 자기 것으로 취하게 되는 사회적 과정은 바로 몸서리쳐지는 전쟁 일상을 통해서였다.
 
 몸에 각인되는 전쟁 체험은 그 어떤 인식이나 주의·주장보다 강렬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북한 인민들이 반미인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일상적·심리적 과정이 전쟁 체험에 있다고 보며, 또한 이것이 애국주의와 결합해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민족주의)로 발전하는 데 주목한다.

남한은 ‘국민’, 북한은 ‘인민’, 그 불편한 이중주

‘인민’이라는 북한의 정치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체제의 수립이라는 비교적 긴 역사적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 계급의 확대, 생산관계의 협동화 그리고 인민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인민의 구체적인 모습 또한 형성되었는데 해방과 정부수립, 전후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완료되는 1950년대 말에 이르러 일정한 정형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하기 위한 계급투쟁과 생산관계의 협동화 완료 그리고 공산주의 교양을 전면적으로 실시하면서부터였다.
 
 근대국가 수립과정에서 구성된 국민(nation)과 인민(people)의 관계를 살펴보면,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인민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타난 개념은 인민이 국민보다 보편적인 사람, 자연인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민이라는 개념은 북한 정부수립 이전에 이미 체계화하고 있었다. 최창익(북한의 부수상을 지낸 ‘연안파’의 거두)은 “역사는 인민의 힘으로 추진되는 것이고 역사발전에 있어서 언제나 인민들이 그 주동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발전 주체로서 인민을 이해하면서도 지도자의 영도를 강조해 인민을 수동적인 동원대상으로 파악했다. 이는 인민을 “역사발전의 주체”로 상정하면서 그 범주와 역할을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인민투쟁사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민은 정부(체제)에 대응하는 것이고, 인민과 정권의 관계는 위계적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남한 헌법에 명시된 ‘국민’ 주권에 대해 살펴보면, 유진오는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할 때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라고 초안을 작성했는데, 논의과정에서 “국민에게 있다”로 바뀐 사정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인민이라는 말은 구대한제국 절대군주제하에서도 사용되던 말이고, 미국 헌법에 있어서도 인민(people, person)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citizen)과는 구별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결국 우리는 좋은 단어 하나를 공산주의자에게 빼앗긴 셈이다.
 
 국민과 인민 개념은 분단국가 수립과정에서 정치적 함의를 지닌 차이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인민은 냉전과 이데올로기 대립, 남북 분단의 우리 현대사와 맞물려 있는 말이다. 북한에서 인민은 국가권력에 종속되는 국민이 아니라 “인간 평등의 원초적 정서”가 포함된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대중적이고 기층민중적인 성격”과 “반엘리트주의적 동원에 활용”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북한이 이런 인민적 의미를 실현하는 데에는 현재까지 실패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힌다.
 
 북한 인민들은 개인적 주체를 억압하고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구조화된 탓에 개인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구성되는 공공영역이 최소화되고 국가와 개인이 소통하는 시민사회 형성이 매우 협소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 시민사회 미형성이 현재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의 기원이며, 향후 정치적 균열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북한도 처음부터 ‘반미’는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 해방에 대해 북한 지도부는 소련과 미국의 역할을 같이 인정했다. 1945년 10월 13일 북한의 한 보고서에는 “조선의 현재 형편은 첫 임무로 반팟쇼전선을 굳게 한다는 것이나 조선에는 사회주의 국가 쏘련과 자본주의 국가 미국이 함께 들어와 조선을 해방 주었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이처럼 일제 강점이 끝난 시점에서 미국은 일방적인 투쟁과 타도의 대상이 아니었다. 해방 초기인 1945년 후반 북한은 미국에 대해 나쁜 평가를 한 것은 아니었으며, 미국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미 제국주의자들을 내칠 수는 없었다. 어찌됐건 미국은 그토록 증오하던 ‘일본’을 물리친 나라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대미인식은 1946년 이후 적대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은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이었으며 북한은 이를 미국의 책임으로 인식했다. 이후 1948년 2월 유엔의 남한지역 단독정부 수립 결정으로 미국에 대한 비난은 한층 높아졌다.
 
 북한의 반미인식은 남북한 분단과정과 함께 진행되었다. 한반도 분할점령이 공식화되고 남북에 분단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며, 반미는 인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김일성 정권에 대한 지지를 수렴하는 매우 강력한 정치적 통로로 이용되기에 이른다.
    
 책의 구성과 차례
 
이 책은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1945년부터 진행된 북한 국가건설과 사회주의 체제가 갖춰지는 1950년대 말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개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은 이 책의 주제에 관한 개괄로서 인민과 근대국가에 대한 이론과 연구방법에 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2장은 인민형성을 매개하는 범주로서 동원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며, 3장은 이북지역의 피점령과 반미인식 형성과정을 다룬다. 4장은 반혁명 상황과 이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대책으로서 반동분자 처리에 주목하여 논하며, 5장은 학교와 로동당, 군대에서 인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규율을 통해 살펴본다. 6장은 인민형성 과정을 로동당원과 군인, 노동자, 농민, 여성으로 나누어 고찰하며, 7장은 이 책 전체의 결론으로서 분단정체성의 극복과 통일국가의 전망이 시급함을 역설한다.

한국전쟁과 북한 사회·인민을 이해하는 새로운 지평
 
북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북한 인민(국민)으로 형성되었는가를 전쟁 사회학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 한국전쟁의 영향과 결과, 북한 사회주의 국가건설 과정을 인민정체성, 미국과의 문제,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중심으로 살펴봄과 동시에 현재적 관점에서 북한의 선군정치와 전쟁 사회의 역사적 배경, 정치적 함의 등을 폭넓게 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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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02 [15:26]  최종편집: ⓒ 수원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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