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차갑고, 따뜻한 순간들'
[김신례의 향기로운 책 이야기] 김승옥 '무진기행'을 읽고
김신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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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옥 '무진기행' 표지  © 수원시민신문
어느새 절반이 넘어가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도통 진도를 나가지 못할때가 있고 눈으로는 분명 읽고 있는데 내용이 새겨지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한 책이라서 급하고 기쁜 마음에 덥썩 읽기 시작 했는데 절반이 넘어가도록 집중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겨우 절반을 넘기고서야 재미가 붙게 되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그렇다.

단편들로 엮어진 책인데도 왜 그렇게 어려우면서 무겁게 읽혀지던지.
그래도 다행히 절반을 넘어서면서는 곧잘 재미를 붙이면서 술술 읽혀져서 다행이다 싶다.
 
‘서울 1964년 겨울’
날짜로도 헤아리기 어려운 그 시절 그 계절. 서울의 그 공기안에서 무슨 사연이 담겨져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던 단편 이야기다.
 
그 시절에 어디에서든 펼쳐지는 풍경인 선술집에서 우연한 만남을 통한 세명의 사나이들의 이야기다. 아님 어쩌면 한명의 이야기거나, 두명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스물다섯쯤 되는 두명의 사나이들은 여는 청년들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죽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서른대여섯 되는 사나이가 그 둘의 자리로 들어오게 된다. 간밤에 아내가 급사를 했는데 도무지 혼자 있을 수가 없었서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아는체를 하면서 그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자기의 말을 좀 들어달라며 달려드는 그 아저씨가 못내 찜찜하지만, 청년 둘은 ‘고작 몇 시간인데, 하룻밤 취기인데..’하고선 참아준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두명의 청년들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죽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미 작정을 하고선 그 둘에게 감정과 시간을 덤벼든 것이다. 죽어가는 아내를 혼자 지켜내고 그 무서움증을 혼자 감당하지 못한 채 그 사나이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해줄 사람을 찾아 나선 것인지? 단지 혼자가 무서웠던 것인지?
 
대꾸없는 무수한 말들로 자신과 아내의 외로움과 불쌍함을 지속적으로 쏟아냈던 그 사나이는 그 밤. 그나마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이야기 내내 주머니속 약들을 이러저리 매만지면서 그 사나이가 그래도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감정을 기대고 소통을 원하다는 것. 쉽지 않다.
 
젊은 청년 두 명 중 한 명은 그 사나이의 죽음을 예감 했다고 한다. 그런데 차마 아는체 할 수도 없었고 잡아 줄 수도 없었다고 한다. 단지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만큼 어려운 것이겠지. 감정을 교감하고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든다는 것이. 다음날 아침 싸늘해진 사나이를 보면서 젊은 청년들은 자신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불쾌한 기분을 느낀다. 여전히 스물다섯 철없는 대학생들처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선술집을 기웃대는 밤을 보내고 싶은 그들인데 난데없는 불청객으로 두 청년들의 감정은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깊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는 늘 계획했던 일상을 바라지만, 가끔씩 의도치 사건들로 일상은 흔들리기도 한다.
난데없는 울고 웃는 감정들로 주저 앉기도 하고, 때론 힘을 내서 한 박차를 가하기도 하는 것이다. 언제든 내 인생에 누군가가 감정을 떠안기고 끼어들 수 있고,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 끼어들 수도 있겠구나 싶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일대의 이야기가 될수도 있는 우연들의 연속이구나. 두명의 청년들에겐 1964년 겨울. 서울은 지금보다 더 추웠겠고 괴롭고 쓸쓸했겠구나 싶고, 사라져버린 그 아저씨에겐 더 많이 쓸쓸하고 순간은 따뜻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김신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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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1/11 [10:43]  최종편집: ⓒ 수원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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