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그 속에서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김신례의 향기로운 책 이야기] 피천득, '인연'을 읽고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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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천득, '인연'의 표지     © 수원시민신문
11월이 좋아졌다. 한 그루의 나무를 풍성하게 드리워졌던 단풍이 져버리고 있는 그 모습이 좋아졌다. 나에게 찾아온 시간적 여유는 나의 시선을 창 밖으로 내던지게 했고 나는 그 덕에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11월의 아름다움을 눈치채고 있는 중이다.
 
11월은 나에겐 어중간하게 가을을 채 비켜내지 못했거나 겨울을 담아내기엔 어색한 달이라고 여겨졌는데 그게 아니었다.
 
비가 온 다음 날에는 축축하게 젖어서 나무 밑에 얌전한 모습으로 겹겹이 쌓여있는 단풍잎들과 아직은 채 떨어지지 않고 절반가량은 매달려있는 단풍잎의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봄날의 화사한 꽃보다는 고요하지만 더한, 깊고 단단한 꽃송이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제야 나무를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풍경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지금의 나는 소설보다는 수필을 택했다. 무겁지는 않지만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그 내공의 수필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공짜로 얻어가는 기분이 들어 늘 든든해지고 배가 불러진다.
 
피천득. '인연'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책이다. 일년전 이맘때 처음 읽었던 책이었는 데 계절이 돌아오듯이 나의 마음과 손이 이 책을 다시 집게 만들었다.
 
결코 한번 읽고선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수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어떤 날은 아무런 생각 없이 책장이 잘 넘어가고 또 어떤 날 은 한 장 한 장, 한 줄 한 줄, 한 마디까지도 나를 되새기게 만드는 것이 수필이라는 마법이다.
 
수필에서도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쓰는 글에 마음을 많이 뺏기는 편이다. 바람에 마음이 일렁이고 비에 젖은 꽃을 보면 벅차오르는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누군가를 환하게 하고 웃음짓게 하는 축복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다시금 읽었던 책에서는 '오월'이 좋았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마음이 들떠지면서 순간순간 방향을 잃을땐 가끔씩 모든 게 귀찮아 진다. 괜한 짜증과 시비가 주변을 힘들게도 하고 내가 나를 상처 내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풍경을 본다.
풍경 속에서 나는 조용해지고 말이 없어진다. 새들이 쪼아먹은 11월의 단감이 되기도 하고 여름날 숲을 더욱 진하게 만드는 비가 되기도 하고 한 아름 목련꽃이 되어 가장 먼저 봄을 알리도 한다.
 
풍경 속에서 나는 웃는다. 그리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기분이 풀어진다. 지금의 나는 11월에 있다.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고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내가 기특하기도 한다. 스물아홉 나의 11월은 다시는 오지 않을테고 나는 11월에 있는 것만으로도 웃을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고마울 따름이다.
 
모두가 봐줬으면 좋겠다. 쓸쓸하면서도 차분하게 가을을 정리하고, 더불어 따뜻하게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11월의 날들을. 그 기특하고 야무진 날들을 놓치기엔 너무 아름답다.
 

김신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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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17 [17:51]  최종편집: ⓒ 수원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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