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일수록. 더 보고 만지고 안아주기
[김신례의 향기로운 책 이야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김신례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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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숙 장편소설 '엄마를 부탁해' 표지     © 수원시민신문
엄마를 잃어버린지 일주일째다.
2년 전쯤 읽었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첫 구절이다. 소중한 물건 간수를 잘 못해서 잃어버린것 마냥, 그렇게 엄마는 엄마의 무게 만큼 휑하니 사라져 버린 것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고 나에게도 찌릿한 감정으로 여운이 짙은 소설이라 주변사람들에게 선물로 권하기도 했다.
 
한 권의 책에  담겨진 소설이라기보단 왠지 4부작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으로 속도를 내지 않고 담담하게 그대로 흡수 하는 기분으로 읽었던 것 같다.

읽은지 오래되어 자잘한 내용이 속속들이 기억나진 않지만, 책 한권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은 여전한 생생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읽자고 마음 먹기도 부담없이 수월했던 것 같다. 4남매의 엄마, 그리고 무뚝뚝한 남편의 아내, 그것 뿐으로 밖에 엄마라는 존재를 표현해내지 못한다. 책 속의 엄마는.
 
번잡한 기차역에서 남편의 손에서 떨어져 버린 엄마. 남편이 놓친것인지 엄마가 놓친것인지 알수 없지만 그 길로 엄마는 존재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감쪽같이 증발해버리는 여름날의 물기 한 줌 처럼.엄마는 없어져버린 것이다. 엄마의 실종으로 4남매는 모이게 되고 어색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엄마를 찾아야 하기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서로 니탓이네 내탓이다 하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구석진곳에서 엄마를 애타게 불러보기도 한다.

엄마는 글씨를 읽을 줄 몰랐다. 그래서 찾을 수 없는 것인지. 그래서 엄마 스스로 나타날수가 없는 것인지. 4남매는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서 엄마라는 존재가 되기 이전까지의 그녀의 과거를 슬그머니 쫒기도 한다.
 
시집와서 이렇다 할 곳에 정을 붙이며 살아가지 못했던 엄마였지만 언제나 엄마를 따뜻하게 따르던 삼촌 균, 이 있어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던 삼촌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되면서 엄마는 변했다. 자주 머리가 아팠고 줄곧 우울했다. 그랬다. 엄마는 엄마의 감정을 추수리지 못하는 엄마가 아닌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오랜 세월동안 글씨도 읽지 못해던 엄마. 엄마 그 전에 여자였던.여전히 여자인 그녀.
글씨를 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에 오히려 엄마의 그 적막감 외로움을 알아채지 못했을 꺼라 생각한다. 나에게 이 소설에서 그 어느것보다 크게 마음을 울렸던 것이 글씨를 읽지 못하는 엄마였다. 너무 가엽고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세계에서 살아갔을 엄마를 생각하면 아프다. 마음이 아프고 또 아프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소리지르는거 싫어하는데, 모두들 엄마한테 소리지르잖아. 말이란게 다 할때가 있는 법인디, 나는 평생 엄마한테 말을 안하거나 할때를 놓치거나, 알아주겄거니 하며 살았다” 그리고선 아빠는 자신을 놓고선 아이처럼 통곡을 하면서 엄마를 부르며 울어버린다. 아빠에겐 엄마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일테니 그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얼마나 버겁겠는지...가늠 조차 할 수 없다.
 
나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 이기만 했다. 그 어떠한 다른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생김새도 통째로 “엄마”라는 지칭으로 묶여서 그냥 한 덩어리가 되어 버린 사람. 사실 이 책이 특히 나에게 깊게 느껴졌던 건 나는 여전히 엄마와 지나온 몇 년을 화해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서 부끄러웠기 때문일 꺼다.
 
여전히 엄마와 나는 서로의 손 끝에 가시 하나씩을 박아놓고 지내는것이 아닌지 싶다. 마음 먹고 거슬렀던 가시를 빼 내고선 서로의 손끝을 맞잡아도 될 것 같은데 아직도 여전하다. 가끔은 그런 내가 한심하기도 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년전쯤에 나는 짧은 시간동안 그토록 엄마를 많이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완전한 화해를 하지는 못했지만 엄마를 생각 해볼 핑계가 생겨서 좋았던것 같았고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또 한번의 핑계로 인해 더 많이 불러보고 더 많이 생각해보고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쉬염쉬염 돌다리 하나씩 하나씩 건너다보면 어느새 건너편에서 아무것도 하지않고 세월만 보내고 있던 바보같은 나는 없어지고 엄마가 있는 이쪽으로 강을 건너고 있지 않을까 싶다.
대신, 엄마를 잃어버리기 전에 조금 더 서둘러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잃어버린 엄마 대신 휑하니 놓여져 있던 파란 슬리퍼를 보면서 마음 도려내는 아픔을 겪고 싶진 않아졌다. 엄마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겠다. 마음에서조차.
 

김신례 시민기자 (우리동네 커피집 성대점 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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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9/05 [14:48]  최종편집: ⓒ 수원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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