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 85호 - 최보기 ‘여명’

《입춘 유감有感 - 봄은 오는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24/02/08 [00:00]

‘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 85호 - 최보기 ‘여명’

《입춘 유감有感 - 봄은 오는가?》

편집부 | 입력 : 2024/02/08 [00:00]

   

입춘 유감有感 - 봄은 오는가?

 

1.

지난 일요일은 입춘이었지만, 월요일 새벽부터 눈이 내려 온천지는 마치 속죄라도 하듯 온통 소복素服으로 갈아입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입춘만 되면 으레 떠오르는 시 한 구절이 이명처럼 자꾸 맴도는 것이었다.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건만 봄 같지 않네.

 

이미 진부해져 버린 春來不似春’, 이 시구가 왜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온갖 소회所懷로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것인가?

 

아니다. ‘春來不似春은 비록 상투화되어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지라도, ‘胡地無花草는 오늘의 정세와 비견하여 양식良識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여기는 지금 아미리견亞米利堅이라는 오랑캐의 점령지인 까닭으로!

 

또한 그것은 일제 치하에서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피를 토하며 절규했던 이상화李相和선생의 목소리가 지금도 이 땅에 울려 퍼지는 까닭과 다름이 없으므로!

 

  속죄라도 하듯 온통 소복으로 갈아입은 들녘 © 수원시민신문


2.

새삼스럽기 짝이 없어 다소 민망한 말이지만,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살아가는 조선의 백성이라면 가장 보람 있고 가장 가치 있는 삶은 애오라지 한 가지밖에 없다. 당연히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식민지 해방투쟁에 동참하는 것이다.

 

식민지 해방투쟁이라는 역사적 과업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운운하며 허랑방탕 몰락의 늪으로 추락해 갔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패배주의에서 준열峻烈히 벗어나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이 힘을 합쳐 계란을 던지면 바위도 깨진다는 신념 하나로 식민지 해방투쟁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신념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영악한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매국적 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세속적 성공을 추구할 때, 우직한 사람들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폭포를 이룬다는 믿음 하나로 태산을 옮기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물론 작금의 상황은 일제 치하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때보다 오히려 식민지 해방투쟁이 더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는 일본 제국주의라는 분명한 적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항일을 통한 민족해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견지할 수가 있었고, 그로 하여 우리 민족은 여러 방법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결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백성들은 대부분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 아니, 적을 도리어 우방이라고 여기며 그 적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참으로 희한한 상황 속에 있다.

 

민족의 분단을 어떻게든 유지한 채 반목과 알력을 조장하여 전쟁 장사를 벌여야 이득이 되는 집권세력과, 그런 사대매국 세력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양이洋夷, 오히려 한 민족 한 겨레를 주적主敵으로 삼아 끊임없이 전쟁을 획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청맹과니귀머거리가 되어 엉뚱한 짓만 벌이고 있으니, 도대체 이 위태롭고 한심한 노릇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니 우리는 자기과시의 거대 담론에도 주눅들지 말고, 소영웅주의적 유치한 운동 노름에도 현혹되지도 말고, 만주벌판에서 항일 유격대를 이끌며 무장투쟁을 하던 어느 위인의 말씀처럼 힘 있으면 힘으로! 돈 있으면 돈으로! 지식 있으면 지식으로!” 그렇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가진 한 방울의 땀이라도 식민지 해방투쟁에 보탠다면, 우리는 가장 보람차고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안성시 죽산면 소재 ‘용설호’의 겨울새들 © 수원시민신문

 

3.

지난 일요일 입춘에 마침, 이쁘고 참한 여성 동무들이 이 누항陋巷을 방문하여, ‘열 명의 농부가 운영하는 유기농 채식 전문 식당에도 가고, 인근의 호숫가도 함께 거닐면서, 나름대로 삽상颯爽입춘제立春祭를 지낼 수 있었는데, 그러는 중 옛사람들이 입춘을 왜 이 아니라 굳이 으로 표기했을까 하는 퍽 생뚱맞은 궁금증이 들었다.

 

주변부는 아직 결빙 상태였지만 중심부는 얼음이 녹아 철새들의 먹이터가 되어주고 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나는 옛사람들의 저의底意를 생각해 보았다.

 

계절의 봄이야 어느 詩人의 말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오는 것이지만, 우리네 사람살이의 봄, 그리고 우리 겨레의 봄은 결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힘을 합쳐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런 간곡한 뜻으로 새기고 말았다.

 

4.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아직도 이 땅에서, 100년 전 상화尙火선생의 저 피어린 절규가 들려오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우리의 뜨거운 눈물을 바칠 것인가?

 

- 202428, 송구영신送舊迎新을 간절히 바라며, 忠淸 鄕闇 卞世炫


 

여명

- 최보기

 

가야 할 곳이 있는 강물은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지난밤 먼 길을 걸었다

 

바위는 강물을 막지 못하고

부정否定은 발길을 잡지 못한다

 

동이 트는 새벽

설빙을 안고 빛나는 산정

 

닿아야 할 곳이 있는 가슴은

얼음처럼 뜨겁다

 

- 시집,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달아실, 2023)


  

[사족蛇足]

다음 주말(17)에는 1990년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되어 온갖 박해와 탄압 속에서도, 조국의 자주통일과 반미 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던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해단식이 있다.

 

물론, 현재 조선()반도의 엄혹한 정세에 발맞추어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서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 그대로, 지금이 곧 민족의 새로운 여명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가야 할 곳이 있는 강물은 / 밤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밤에도” “먼 길을 걸을 것을 나는 확신한다.

 

그리하여, “닿아야 할 곳이 있는 가슴은 / 얼음처럼 뜨겁다는 것, 그것 또한 확신한다.


  

[낙수落穗]

, ‘동방규東方虬소군원昭君怨중에서

 

우공이산愚公移山 :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인데, ‘오랜 시간이 걸려도 꾸준히 노력해 나간다면 결국엔 뜻을 이룰 수 있다정도로 의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부중에서  

  


 

[알림]

 

본지는, ‘충청도 촌놈 변세현(卞世炫)’이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재작년 6월부터 써서 보내기 시작한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를 연재합니다.

 

글쓴이는 한때 재수학원에서 국어를 강의하며 호구(糊口)하였으나 그만두고 10여 년 산천을 주유(周遊)하다가, 지금은 충청도 한촌에서 텃밭 농사로 적당히 땀 흘리고, 반려견 한 마리 길고양이 네 마리 닭 아홉 마리와 즐거이 놀면서, 가끔 동지들과 만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62]부터 시작해서 계속 목요일마다 싣지만, 그동안 싣지 못한 글들은 엄선해서 날짜와 상관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많은 애정과 지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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