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79호 - 문정희 ‘순간’

《사랑, 그 불가사의한 과제》

편집부 | 기사입력 2023/12/28 [11:46]

‘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79호 - 문정희 ‘순간’

《사랑, 그 불가사의한 과제》

편집부 | 입력 : 2023/12/28 [11:46]

《사랑, 그 불가사의한 과제

 

  1.

  내게 남은 것은 그대가 남기고 간 한 줌 소금 같은 그리움이니! // 베인 상처에 갯물이 들 때처럼 마음 안이 쓰리고 / 그대 떠나고 나도 그대 쪽으로 기울어졌다- 이대흠, 곰소에서부분.

 

  속절없이 한 해가 저물고 있는 지난 일요일(24) 새벽, 홀연 잠이 깬 나는 왜 느닷없이 저 쓰라린 연시戀詩 한 구절이 떠올랐을까? 신새벽, 잠이 깨어 창 너머 희끗희끗 흩날리는 눈발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왜 생뚱맞게 청춘의 한때가 떠올랐던 것일까?

 

나는 내 기억의 묵은 서랍을 뒤적이며 연애시 몇 편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난분분난분분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아슴아슴 떠도는 몇 낱의 시구詩句도 소환해 보는 것이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부분.

 

  내 청춘의 한때, 나의 연애는 그리움기다림”, 어디쯤이었을까? 그리움은 과연 내 마음 안을 그토록 쓰리게 한 적이 있었던 것일까? 의 기미機微를 미리 알아버렸다고 호언하던 나는,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으며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했던 것일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그 시절은 사랑의 아픔과 고뇌마저 하나의 제스처(gesture)에 불과했었다. 다시 말해 사랑과 실연마저 유치한 과시욕이나 소영웅심의 훈장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연애를 하고 또 이렇게 실연을 하고, 이 정도의 아픔으로 이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으니 제발 나를 좀 알아달라는 칭얼거림에 지나지 않았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이성복, 숨길 수 없는 노래 2부분.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리워서, “그대는 늘 부재하고, 부재하므로 나의 사랑은 늘 서러움이고, “그대는 항상 너무 빠르거나 늦을 수밖에 없고... 이렇게 조금씩 사랑의 진실을 깨달아 가면서 나의 청춘도 서서히 끝이 났을 것이다.

 

그로부터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 시절의 연애에 대한 지금의 내 기억은 분명 왜곡되었을 것이다. 그 왜곡 속에는, 누구나 흔히 저지르는 과장과 미화美化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 과장과 미화는 왜곡보다는 차라리 조작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기억의 문제보다 분명 더 중요한 물음이 하나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었다. 그런 물음을 지니고 있는 한 나의 연애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나는 사랑이란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다. 아니, 입에 담지 못한다. ‘사랑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어서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운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가를 지금도 묻고 또 묻고 있기 때문이다.

 

  2.

  오다 말다 / 창호지 문살에 / 눈 그림자 스치네. / 마음은 천리만리 무심인데 / 귀는 문밖에 서성이며 /눈 맞네.- 김용택, 그리움전문.

 

  “마음은 천리만리 무심이라도 귀는 문밖에 서성이는 것을, 나는 일찍이 원초적 그리움이라고 명명하였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子宮과 분리되는 순간, 원초적 그리움이 가슴에 새겨진다. 그러니까 그 원초적 그리움은 우리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낙원(합일과 안식)’이었던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회귀본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자궁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외로워하고, 끊임없이 누군가(무엇인가)를 그리워할 수밖에는 없다. 분리는 곧 불안과 공포이므로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과의 결합, 즉 사랑을 갈망하는 것이다.

 

모든 연애는 자궁으로의 회귀 본능에 다름 아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더 외로워지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리워지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역설을 체험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히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우리의 연애는 반드시 실패로 끝난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실존적實存的 한계이며 비극이다.

 

  3.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이 어머니의 자궁에 대한 회귀 본능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아직 어린이(미숙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걸 증명할 뿐이다.

 

  인간의 아기는 다른 생명체와 달리 그야말로 미숙아로 태어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어머니(혹은, 누군가)의 돌봄과 사랑이 없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어머니(혹은,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인 것이다.

 

어머니(혹은,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이러한 생존본능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달라붙어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직시할 수 있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고, 우리는 드디어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주체적 인간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사랑을 그저 받으려고만 한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은 사랑이 수동태로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태로 하는 것’, 나아가 적극적으로 주는 것이란 걸 알고 그걸 실천해 나간다.

 

 ▹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표지(문예출판사, 5판 16쇄, 2023년)  © 수원시민신문



  4.

이제는 명실상부 사랑에 대한 교과서로 자리잡은 책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1953)에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미숙한 사랑’, 혹은 가짜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가짜 사랑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숭배적 사랑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우상화해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하여 그에게 복종하고 헌신하는 그런 사랑의 형태를 띤다. 흔히 우리가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것이 이런 유형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상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상대는 자신의 기대를 결코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은 끊임없는 불만에 사로잡혀 갈등과 고통 속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사랑을,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에서는 지고지순한 순애보로 형상화하는 경우가 있고, 일반인들은 또 그렇게 착각하면서 그런 사랑을 자신의 본보기로 내면화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감상적 사랑이다. 앞의 숭배적 사랑사람에 대한 인지 편향이라면, ‘감상적 사랑사랑에 대한 인지 편향이다. 사랑에 너무 많은 기대나 환상을 부여해서 현실에서의 사랑이 너무 시시하게 생각되는 사랑이다. 이런 사람들의 사랑은 오로지 영화나 드라마, 대중가요나 소설 속 환상에서만 경험될 뿐이기 때문에, 현실의 사랑에서 어떠한 만족도 얻지 못하게 된다.

 

  세 번째는 투사적投射的 사랑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상대방이 채워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매번 갈등이 생기게 되는데, 정작 자신은 그 갈등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상대방에게서 찾기 때문에 이로써 갈등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따라서 투사적 사랑은 계속 상대를 탓하거나 원망하다가 결국 파국에 이른다.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략)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 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중략)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 데 실패한다.】 ②

 

  4.

  나무는 /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서지 않기 위해 /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 그러나 굳이 바람이 불지 않아도 / 그 가지와 뿌리는 은밀히 만나고 / 눈을 감지 않아도 / 그 머리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 류시화, 나무는부분.

 

프롬은 또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홀로 설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홀로 설 수 없는 그()는 상대에게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끊임없이 요구하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고 오로지 의존적 관계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숙한 사랑자신의 통합성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중략)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③

 

  그리고 사랑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사랑을 사랑하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즉 올바른 대상만 만나면 사랑의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동경하고 있는 이상형이란 그 얼마나 위험한 환상일 것인가.

 

  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밖의 일은 모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태도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올바른 대상만을 고르면서 대상만 찾아내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에 비유할 수 있다.】 ④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태도’,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⑤

 

  6.

사랑에 있어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다만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채 삼포 세대로 살아가는 것이, 과연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불과한 것인지를.

 

물론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한, ‘병든 개인의 배후에는 반드시 병든 사회가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문제아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는다. 그러면 그 문제 부모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문제 부모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일까? ‘문제 부모만 탓하면서 우리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주류 학자나 언론들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면서, 결코 병든 사회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 아니, 언급할 수가 없다. 그들은 지배계층의 이익을 비호하며 그 이익에 기생하고 있으므로 결코 이 사회가 병든 사회임을 밝힐 수가 없는 것이다.

 

개인의 건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병든 사회를 변혁變革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김태형 지음,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표지(갈매나무, 2023) © 수원시민신문



- 20231228, 龍垈 蝸屋에서, 卞世炫


 

 

순간

- 문정희

 

찰랑이는 햇살처럼

사랑은

늘 곁에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이름을 달아주지 못했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 버리고

그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했다

 

- 시집, 이 세상 모든 사랑은 무죄이다(을파소, 1998)


[사족蛇足]

  그렇다. 비록 이름을 달아주지 못하더라도 사랑은 늘 곁에 있.

 

그대여, 그대에게도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 어쩌지 못하는 순간이 있었던가? 그렇게 눈부시게 보내 버리고”, “오래오래 그리워하는 사랑이 지금도 가슴을 아리게 하는가?


 [낙수落穗]

류시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중에서.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사랑의 기술(문예출판사, 516, 2023), 145

같은 책, 40

같은 책, 74~75

같은 책, 74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문제를 제기하며, 그 해결책을 모색해온 심리학자 김태형선생의 신간,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갈매나무, 2023)를 참조할 것.

 


 

 

[알림]

 

본지는, ‘충청도 촌놈 변세현(卞世炫)’이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작년 6월부터 써서 보내기 시작한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를 연재합니다.

 

글쓴이는 한때 재수학원에서 국어를 강의하며 호구(糊口)하였으나 그만두고 10여 년 산천을 주유(周遊)하다가, 지금은 충청도 한촌에서 텃밭 농사로 적당히 땀 흘리고, 반려견 한 마리 길고양이 네 마리 닭 세 마리와 즐거이 놀면서, 가끔 동지들과 만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62]부터 시작해서 계속 목요일마다 싣지만, 그동안 싣지 못한 글들은 엄선해서 날짜와 상관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많은 애정과 지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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