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78호 - 안도현 ‘겨울 나무들한테 배운다’

《올해의 사자성어》

편집부 | 기사입력 2023/12/21 [09:45]

‘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詩78호 - 안도현 ‘겨울 나무들한테 배운다’

《올해의 사자성어》

편집부 | 입력 : 2023/12/21 [09:45]

 올해의 사자성어

  

1.

사람들이 해마다 이맘때쯤 교수신문을 주목하는 까닭이 있다. 교수신문대한민국의 한해를 압축하여 표상하는 사자성어四字成語, 2001년부터 매년 12월에 연말 기획으로 발표해 왔다.

 

올해는 20명의 추천위원이 26개의 사자성어를 추천했고, 내부 검토를 거쳐 상위 5개의 후보를 확정해 1128일부터 3일간 이메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1210, 그 결과를 발표했다.

 

상위 5개의 후보를 5위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임을 자처하는 대학교수들이 올 한해를 어떻게 생각하면서 마무리 짓고 있는지, 그 단서를 살펴보는 것은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5[득표 108(8.1%)] : 제설분분諸說紛紛- ‘여러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럽다는 뜻으로, 각자 자신들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며 서로 다투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확증편향제 식구 감싸기가 뒤섞여 있을 것이다.

 

4[155(11.8%)] : 도탄지고塗炭之苦- ‘진구렁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고통이라는 뜻으로, 군주가 포악하고 착취가 심하여 백성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지경에 처해 있음을 비유하는 아주 유명한 말이다.

 

일찍이 공자도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고 설파하였으니, 양식 있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포악한 군주 아래서 도탄에 빠진 백성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3[323(24.6%)] : 남우충수濫竽充數-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함부로 피리 부는 악사 틈에 끼어 인원수를 채운다는 뜻이다.

 

한비자韓非子에 근원을 두고 있는 말로,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체 가장함을 뜻하거나, ‘능력이 없는 자가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하는 성어다. 예부터 우군愚君이 폭군暴君보다 더 위험하다.”고 했으니, 이 또한 작금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말이 아닐 수 없다.

 

2[335(25.5%)] : 적반하장賊反荷杖- ‘도적이 오히려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워낙 유명한 성어라 무슨 토를 다는 것이 민망할 정도지만 우리 속담과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 “문비門裨를 거꾸로 붙이고 환쟁이만 나무란다.”, “소경이 개천 나무란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놓으라 한다.” 이 모든 속담이 어느 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어느 한 집단을 가리키는 듯하여 참으로 씁쓸한 연말이다.

 

 ‘견리망의見利忘義’ 휘호,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예서체로 직접 썼다. © 교수신문


2.

대망의 1위는 396(30.1%)를 얻은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차지했다. ‘보면 의를 잊는다는 뜻이다. 사익私益을 위해 정견이고 정책이고 다 내던지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며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는 오늘의 정치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똥파리가 똥자루를 향해 떼 지어 몰려들 듯, 이익이 있는 곳이면 피아彼我 구분 없이 어디나 몰려들어 그 똥자루를 핥아대다가, 때가 되면 적당히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다투는 척하다가 때가 되면 또다시 다 함께 똥자루를 핥아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 아닌가!

 

굴원屈原(BC 343 ? ~ BC 278 ?)2,300여 년 전에 벌써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온 세상 모두가 다 흐린데 나 혼자 맑고 깨끗했으며,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취해 있는데 나 혼자만 맑게 깨어 있어서, 이것 때문에 추방되었소.[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③

 

그렇다. 똥자루를 핥고 있는 사람들은 똥자루를 핥지 않는 사람을 도저히 용납도 용서도 할 수 없다. 기어이 똥을 묻혀 한패를 만들거나 그를 처단해야 한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작금에, 홀로 맑고 홀로 깨어 있는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피아 구분 없이 얼마나 애를 쓰고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가? 그러는 그들이 오히려 측은하고 안타까울 지경이다.

 

주류언론에서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견리망의見利忘義를 선택한 교수들은 대통령의 친인척과 정치인들이 이익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고위공직자의 개인 투자나 자녀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 등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교수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치가 상실되는 시대가 됐다며 사회 지도층이 공동체의 의로움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연합뉴스(2023.12.10.)

 

3.

견리망의의 반대말도 아주 유명하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견리사의見利思義(보면 의를 생각한다)’가 바로 그 말이다. 이 말과 짝이 되는 견위수명見危授命(나라의 위급함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 또한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말이다.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완성된 사람)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를 보고 의를 생각하며, (나라의)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래된 약속을 평생의 말로 잊지 않는다면 역시 성인成人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④

 

그리고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이 여덟 글자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되기 전 옥중에서 남긴 20여 편의 유묵遺墨 중 하나로 더욱더 유명해진 글이다. 1972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4.

그렇다면 작년에는 대한민국 교수들이 어떤 사자성어를 선정했을까?

 

50.9%의 압도적 지지로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되었다. 교수신문의 기사(2022.12.11.)를 발췌하여 소개한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올해였지만 희망과 기대는 잠시뿐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검증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발언 사태, 그리고 인재人災로 발생한 이태원 참사’(10.29)까지, 제대로 된 해명과 사과는 없었다.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행태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한다. (중략)

 

과이불개논어』 「위령공편衛靈公篇에 처음 등장하는데, 정확히는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로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

 

설문에 답한 60대 인문학 교수는 많은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라며 인정하지 않으니 사과할 이유가 없고 그러면 고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교수사회에 대한 지적도 반성하도록 한다. “논문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논문제출자만 탓할 뿐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을 묻지 않는다.”

 

2위는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욕개미창欲蓋彌彰, 3위는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을 뜻하는 누란지위累卵之危, 4위는 과오를 그럴듯 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한다는 뜻의 문과수비文過遂非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5위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군맹무상群盲撫象이 차지했다. 주지하다시피 자기의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 판단하다라는 의미로, ‘우물 안 개구리(정저지와井底之蛙)’대롱으로 하늘을 엿본다(이관규천以管窺天)’와 그 뜻이 매우 비슷하다.

 

참고로 재작년(2021)에는 묘서동처猫鼠同處가 선정되었다.

 

중국 당나라의 정사正史를 담은 구당서舊唐書신당서新唐書에 나오는 말로,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산다는 뜻이다. ‘적대관계에 있는 쌍방이 오히려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한 사람의 잘못을 용인하거나 덮어주는 것, 또는 같은 편이 되어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그 당시 고양이는 누구이며 는 또한 누구였을까? ‘고양이는 어떤 패거리였으며, ‘는 또한 어떤 패거리였을까? 아무튼 약탈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땅에서는 오늘도 내일도 묘서동처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5.

20여 년 동안,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중에 긍정적인 평가가 담긴 말은 없었다. 2016년에 선정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긍정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백성은 강물이며, 임금은 강물 위에 떠 있는 배라는 뜻으로, ‘강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국민이 한 나라의 지도자를 세울 수도 있고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主權在民사상이 담겨 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이니, 나는 올해를 보내면서, 이 말에 만백성의 명년明年 소망을, 아주 간절히 매우 절박하게 담아보는 것이다.

 

- 20231221, 龍垈 蝸屋에서, 卞世炫


 

겨울 나무들한테 배운다

- 안도현

 

그리하여 삶이란 화투판에서 밑천 다 날리고

새벽, 마루 끝에 앉아 냉수 한 사발 들이키는 것

몸뚱이 하나, 혹은 불알 두 쪽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 때

저 겨울 나무들을 바라볼 일이다

스스로 벌거벗기 위해 서 있는 것들

오로지 뼈만 남은 몸 하나가 밑천인 것들

얼마만큼 벗었느냐, 우리도 절망을 재산으로 삼을 도리밖에 없다

희망 같은 것 몽땅 잃어버린 대신에 우리 가진 절망은 또 얼마나 많은 것이냐

절망으로 밥을 해먹으면 한 3년은 버티겠다

바람 찬 노숙의 새벽이여 부디 무사하라 그리하여 쓰러져 길가에 잠들지라도 잊지는 말라

아직도 반성문을 써야 할 일기장의 페이지는 하얗게 비어 있다는 것을

겨울 나무들, 이 악물고 떨지도 않고 말한다

두 손 치켜들고 아침을 맞으려면 아직도, 아직도 멀었다고

 

-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2001)


 

[사족蛇足]

진부한 말이지만, ‘어둠의 끝에서 간절히 을 소망하듯, “절망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제대로 된 희망을 염원한다. 우리는 이렇게 역사의 변증법적 발전을 믿는다.

 

그러니 이 땅의 어린 백성들이여! 더 크게 절망할지니!

 

그리하여 쓰러져 길가에 잠들지라도 잊지는 말라 / 아직도 반성문을 써야 할 일기장의 페이지는 하얗게 비어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겨울 나무들, 이 악물고 떨지도 않고 말한다 / 두 손 치켜들고 아침을 맞으려면 아직도, 아직도 멀었다고

 

그리하여 우리는 소리친다.

 

누군가(무엇인가)를 기다리는 이 겨울 아침이 그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지! 우리의 가슴을 그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낙수落穗]

는 사전에 피리의 일종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생황笙篁에 더 가까운 악기라고 함.

 

문비門裨 : 정월 초하룻날에 악귀를 쫓는 뜻으로 대문에 붙이는 신장神將의 그림.

 

굴원, 어부사漁父詞중에서. 그 말미에는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다. 새로 머리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턴다.”고 하였소. 어떻게 자신의 깨끗함으로 상대의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차라리 상수湘水의 물결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내질지언정 어떻게 희고 흰 결백함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원문 : 子路問成人, 子曰 (중략)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자로문성인, 자왈 견리사의 견위수명 구요불망평생지언 역가이위성인의)

 


 

[알림]  

 

본지는, ‘충청도 촌놈 변세현(卞世炫)’이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작년 6월부터 써서 보내기 시작한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를 연재합니다. 

 

글쓴이는 한때 재수학원에서 국어를 강의하며 호구(糊口)하였으나 그만두고 10여 년 산천을 주유(周遊)하다가, 지금은 충청도 한촌에서 텃밭 농사로 적당히 땀 흘리고, 반려견 한 마리 길고양이 네 마리 닭 세 마리와 즐거이 놀면서, 가끔 동지들과 만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62]부터 시작해서 계속 목요일마다 싣지만, 그동안 싣지 못한 글들은 엄선해서 날짜와 상관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많은 애정과 지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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