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 詩77호-이대흠 ‘노래’

《확증 편향과 필터 버블, 그리고 레드 콤플렉스》

편집부 | 기사입력 2023/12/14 [11:09]

‘충청도촌놈’ 변세현卞世炫의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 詩77호-이대흠 ‘노래’

《확증 편향과 필터 버블, 그리고 레드 콤플렉스》

편집부 | 입력 : 2023/12/14 [11:09]

  

확증 편향과 필터 버블, 그리고 레드 콤플렉스

 

1.

한 장 남은 달력을 무연히 바라본다. 12월이 벌써 2주가 훌쩍 지나고 있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한 장 남은 달력에 민감한 듯하다. 억지로라도 한해를 반성하고 다가올 새해를 위해 무엇인가 건설적인 결심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증마저 느끼는 듯하다.

 

그러면 작년 이맘때 나는 어떤 반성을 하였으며, 또 어떤 소망을 갖고 그 소망의 실천을 위하여 어떤 방법적 고민을 하였든가? 솔직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기억나지 않더라도 그 당시 성찰소망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개인과 공동체를 위한 고민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니까!

 

그 성찰의 하나로 지지난 주에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수많은 논리적 오류에 대해 살펴보았으며, 지난주에는 미국의 쿠바 돼지만 침공이라는 허무맹랑한 작전을 통해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늘은 인간은 과연 합리적 존재인가?’라는 오래된 물음과 다시 마주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19~1989)’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일 뿐이다.”라고 주장하였다는데, 아무튼 인간의 저 불가사의한 측면에 대하여 우리는 늘 열려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의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나없이 지닌 확증 편향때문이다.

 

2.

▲ 전환시대의 논리》 초판(1974) 표지    ©수원시민신문

확증 편향은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을 말하는데,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이라고 간략히 정의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상대를 향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라며 무척 답답해 하는데 이것이 바로 확증 편향에 대한 일반적 반응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 또한 나에게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확증 편향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정보처리의 간소화이다. 인간은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 모든 정보를 처리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의사결정을 간소화하기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확증 편향은 이러한 정보처리의 간소화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며,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의견을 확인하고 강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 때문에 반대 의견의 증거들은 아예 무시되고 만다.

 

인간 뇌가 가진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즐거움유쾌함과 같은 긍정적 감정은 쉽게 수용하지만, 괴로움불쾌함 같은 부정적 감정은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름의 방어 기제를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괴로움을 감당하기보다는 방어 기제를 작동하여 편안한 거짓이 주는 즐거움 속에 안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인지적 원인이나 정서적 원인보다 확증 편향을 강화하는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원인이다. 어떤 사회적 그룹 내에서 개인은 해당 그룹의 가치관과 신념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그룹 내에서 확증 편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떤 사회적 환경(예컨대 군대, 경찰, 검찰, 종교단체 등)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확증 편향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은 AI 등 최첨단 기술이 확증 편향을 강화하고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주장이 매우 거세다. 2010년대에 들어 구글이나 유튜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의 사용자 맞춤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서, 이들의 알고리즘은 시청자들에게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줌으로써 사용자를 잡아두는 용도로 쓰는 것인데, 이것이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민주주의 이념을 훼손하고, 정치적 양극화와 반지성주의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이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시스템에 뉴스 콘텐츠가 섞이면 생각지 않았던 부작용이 발생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뉴스, 보고 싶은 뉴스만 보면 결국 정치·사회적인 문제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을 강화하는 계기가 된다. 강화된 고정관념과 편견은 좀 더 입맛에 맞는 게시물만 가지고 온다. 악순환이 반복강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론을 잘못 이해하게 될 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Fake News)’가 확산력을 가지게 된다. 이런 문제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던 것이 45대 미국 대통령 선거다.

 

버즈피드(BuzzFeed)’20161117일에 낸 분석 기사에 따르면, 미국 대선 전 3개월간 가장 인기 있었던 가짜 뉴스’ 20개의 페이스북 내 공유반응댓글 수는 8711천 건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등 주요 매체의 기사보다 더 많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프란체스코 교황이 트럼프 지지를 발표했다거나, ‘클린턴 후보가 ISIS에 무기를 판매했다는 식의 터무니없는 내용도 특정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확증 편향을 강화하며 유사한 성향의 그룹들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확산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터 버블은 개인의 편견이나 고정관념만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필터 버블은 사회와 정치에 악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오작동을 유발한다. 테크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서비스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건강한 민주주의는 반대 의견을 얼마나 접하는가에 달렸다라고 강조하며 필터 버블현상을 우려했다.

 

3.

게다가 한국사회는 매우 특수한 사회다. 미 제국주의의 신식민지 지배와 분단 체제가 빚어놓은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래서 이 사회구성원들은 누구나 크건 작건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에 시달리고 있다. 소위 빨갱이 잡는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이 이 사회를 통치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 있는 탓이 크다.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는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어떤 사상을 공산주의인 것처럼 지칭하여 그 사상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Red는 공산당에 대한 멸칭인 빨갱이또는 공산당의 상징색인 빨간색을 뜻한다. 영어권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로 대한민국 내에서 통용되는 신조어이다. 단순히 공산주의 자체를 공산주의로 지칭하는 것을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지는 않는다.- 위키피디아

 

공산주의에 대한 과민반응을 일컫는 말. 적색공포증이라고도 한다.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과장되고 왜곡된 공포심과, 그 공포심을 근거로 한 무자비한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거나 용인하는 사회적 심리까지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중략中略>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하여 한국 현대사에서 정권에 의하여 레드 콤플렉스가 체제안정과 정적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두산백과

 

우리 세대는 어릴 때부터 주입된 반공교육이 골수까지 스며들어 특히 에 대해 아주 강한 확증 편향을 지니고 있다. 나는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있는 친구들에게 가끔 반농조로 다음과 같이 물어보기도 한다. “공산주의가 왜 나쁜 지 한 가지만 말해봐.” 혹은, “공산주의가 싫은 합리적 이유를 한 가지만 대봐.” 이러한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는 친구는 없다. 그냥 싫어하고 그냥 무서워한다. 지독한 확증 편향이다.

 

그들의 에 대한 인지 편향의 근거는 대개 6.25 때 왜곡되고 날조된 정보나, 미 제국주의의 악랄한 봉쇄와 자연재해가 겹쳐 식량란이 극심했던 1990년대 소위 고난의 행군시절에 머물러 있다. 역사적 진실이나 현재의 사실(fact) 근거는 아예 외면하거나 거부해 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북맹北盲이 되어서 오히려 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듯이 떠들고 다닌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역화 효과(backfire effect, 逆火 效果)’의 가장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역화 효과란 자신의 신념과 모순되는 증거나 사실이 제시되더라도 신념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반발 심리에 의해 기존의 편견을 더욱 강화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다. 흔히 종교나 정치 분야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4.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바로 그 해(1974), 역사적인 책 한 권이 창작과비평사에 의해 출간되었다. ‘사상의 은사라고 칭송받고 있는 리영희(1929~2010)’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바로 그 책이다.

 

박정희유신독재의 서슬푸른 칼날이 백성들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던 시절에, 그 책은 베트남 전쟁의 진실과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추악한 짓을 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처음으로 알려주었다. 반공이데올로기에 찌들어 눈과 귀가 멀어 있던 우리에게 그 책은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죽비가 되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대전환을 불러온 망치였다.

 

위에서 언급한 두산백과에서는 선생을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레드 콤플렉스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진실을 위한 투쟁을 했다는 이유로 9번 투옥되는 곤욕을 치른 지식인 ~

 

그렇다. 인류의 역사에서 진실을 남보다 먼저 말하여 죄인이 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저 유명한 투자전문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것은 기존의 견해들이 온전하게 유지되도록 새로운 정보를 걸러내는 일이다라며 편견과 고정관념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야유했다.

 

우리가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는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확증 편향에 빠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최소한 확증 편향에 빠질 수 있는 잠재적 가능태라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확증 편향을 우리가 익히 아는 한자 성어로 바꾸면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적 단서는 그 반대말에 해당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오상아吾喪我 - 나는 나를 죽였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발견한다. 온갖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 있는 나를 과감히 죽이지 않고서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20231214, 龍垈 蝸屋에서 卞世炫


  

노래

- 이대흠

 

저들이 말하는 저들의 역사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노예여!

우리, 핏빛 황토에 발을 심고

만적을 얘기해도 좋으리라

 

내게 낫을 주오

쇠스랑 주오

 

!

- 시집, 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창작과비평, 1997)


  

[사족蛇足]

80년대 우리는 고단했지만 즐거웠다. 그 시절 우리는, 투쟁 목표가 분명했으므로 함께 뭉칠 수 있었고, 함께 어깨를 겯고 있었으므로 그 어떤 시련도 두렵지 않았다.

 

늦은 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포장마차에서 마시는 소주 한잔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 소주는 그냥 술이 아니었다. 그 투명한 액체 속에는 겨레와 인민의 모든 소망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80년대 들어 우리는 비로소 반미와 자주통일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가 오고,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군사독재 정권(민주정의당)과 김영삼(통일민주당)과 김종필(신민주공화당)이 야합하여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지고, 김대중(평화민주당)은 홀로 야당으로 남았고, 호남 대 호남의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곧이어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누구는 지갑을 챙겨 재빨리 떠났고, 누구는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서 제도권에 들어가 한자리할 생각에 골몰했다.

 

나는 소련이 해체되던 그 이듬해 2, 배낭 하나 둘러메고 섬과 섬으로 떠났다. 거의 한 달 동안, 내가 섬인지 섬이 아닌지 묻고 또 물으면서...

  


  

[알림] 

 

본지는, ‘충청도 촌놈 변세현(卞世炫)’이 암울한 시대를 관통하며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몇몇 지인들과 함께 읽기 위해 작년 6월부터 써서 보내기 시작한 목요일木曜日 함께 읽는 시를 연재합니다.  

 

글쓴이는 한때 재수학원에서 국어를 강의하며 호구(糊口)하였으나 그만두고 10여 년 산천을 주유(周遊)하다가, 지금은 충청도 한촌에서 텃밭 농사로 적당히 땀 흘리고, 반려견 한 마리 길고양이 네 마리 닭 세 마리와 즐거이 놀면서, 가끔 동지들과 만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62]부터 시작해서 계속 목요일마다 싣지만, 그동안 싣지 못한 글들은 엄선해서 날짜와 상관없이 실을 예정입니다. 많은 애정과 지지, 관심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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