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 미얀마 쿠데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유일상 건국대 명예교수, 민플러스에 기고한 글

김삼석 기자 | 기사입력 2021/03/08 [19:44]

[긴급 진단] 미얀마 쿠데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유일상 건국대 명예교수, 민플러스에 기고한 글

김삼석 기자 | 입력 : 2021/03/08 [19:44]

 

나는 역사문화여행 다큐멘터리 기사의 작가로서 취재를 위해 순전한 자비로 2018년과 2019년의 상당기간 미얀마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미얀마 동쪽의 샨 주, 중부의 버마 왕국 당시의 수도 만달레이 지역과 사가잉 지역, 양곤과 이라와디 지역과 카친 주 등을 여행했고 이를 정리하여 블로그에 올렸다. 현재 출판 작업 중인 베트남 역사문화여행기가 완성되면 한국인이 진출하여 성공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미얀마를 더욱 많이 여행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발이 묶여 길을 떠나지 못한 상태에서 쿠데타와 시위보도를 접하게 되었다.(편집자 주 : 유일상 건국대 명예교수가 인터넷 민플러스에 지난 3월 2일 게재한 글이다.)

▲ 민플러스 누리집 모습  © 수원시민신문



1. 세상 모든 일을 파악할 때, 중요한 몇 가지 중에서 보편성과 특수성은 통일되게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 있을 때는 이를 구별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서도 이 점을 오인 또는 알면서도 서방주류언론이 만들어 내는 허구 곧 가짜뉴스에 따라 우리나라 언론이 이를 그대로 전달하고 그에 따라 여론이 왜곡되어 가고 있는 것이 참으로 딱하다.

 

첫째, 군사쿠데타에 대한 관점 문제이다. 대개의 군사쿠데타는 강대국의 정보기관이 배후 조종을 하여 일으킨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군사쿠데타는 악으로 생각한다. 군부 쿠데타에 시달린 경험이 많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확대해서 보편화하여 미얀마 군사쿠데타를 보는 것은 중국건국과정에서 부패한 장개석 정권의 군대와 중국인민해방군을 같은 군대로 잘못 보는 것과 같다.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미얀마 곧 버마의 군부는 무장독립운동으로 독립을 쟁취한 군대였고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서 마치 민주정권으로 보이는 아웅산수치의 아버지인 버마 공산당을 창건한 6명의 간부 중 하나인 아웅산 장군(1915-1947)의 후배군인들이다. 아웅산 장군은 수치의 혈육상 아버지이지만 미얀마 군대의 정신적 아버지이다. 공산당 출신이지만 새 국가 건설을 위해 미얀마 공산당과 민족주의 세력의 결합을 완성하고 토사구팽 당한 아웅산 장군의 암살 사건은 살펴보면 김구 상해임시정부 주석의 암살처럼 배후에는 정보공작기관이 있다.

현재의 미얀마는 영국과 프랑스가 내정한 남아시아 나눠 먹기로 만들어진 나라여서 버마족은 68%이고 소수민족이 30%를 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도 7개의 버마인 주거주지인 도(region. 일반적으로 지역으로 번역)와 소수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7개 주(state)로 나누어져 있다. 이들 주에서는 계속하여 민족별 독립군이 민족자주독립을 요구하며 전투를 일으켜 미얀마라는 아웅산 장군이 남긴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부가 필요하다. 이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일반적·보편적 쿠데타와 동일시하는 것은 무지나 오만이다.

둘째, 1988년의 민주화운동은 네윈(Ne Win/중국명 통칭 吴奈温오나온. 명나라 말의 객가 계 중국인 후손. 1910-2002)장군의 군부독재(집권기관 1962-1988)를 무너뜨렸다. 서방뉴스 보도는 이를 ‘색깔 혁명‘이라고 불러 마치 그 동안의 버마 군부가 공산주의 군대인 것으로 반대 해석하는 논리적 함정에 빠지게 하고는 더 이상의 해설을 하지 않는다. 색깔혁명이라고 표현은 버마의 ’승의(僧衣)‘ 색깔로 이 시위를 ’Saffron Revolution‘이라고 부르고는 충분히 해설해 주지 않아 짙은 황색인 ’Saffron‘을 빨갱이 색으로 오해하게 내버려 두었던 후과이다.

버마 쪽으로 내려온 중화민국 장개석 군대의 행패는 무지막지했다. 장개석 군대(國府軍)는 황걸(黃杰. 1902–1995)장군이 지휘하는 부대 장병 3만여 명이 1953년 6월까지도 베트남 서남쪽의 푸꾸억(富國부국)섬을 차지하다가 돌아갔다. 대만도 차이잉원(蔡英文. 1956년생)총통이 지금 누구를 위해 정권을 잡고 있는가를 숙고해보면 비슷한 답이 나올 수 있지만 그녀에 비해 수치는 역량이 훨씬 부족하다.

미얀마 군대는 이들 장개석 군대 패잔병을 소탕하기 위해 중국인민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1950년대 중반에야 이들을 패퇴시킬 수 있었다. 아웅산 장군의 동지였지만 국부군 축출과정에서 전공을 세워 군사독재자가 된 네윈이 중국계 버마인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택동 정권과 가까웠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는 6번이나 결혼한 플레이보이라는 점에서 비슷할지 모르지만 일본군 출신으로 외세의 이익을 대변한 박정희 장군이나 전두환 장군과 달리, 미얀마라는 국가를 완성하려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

지금의 미얀마 시위는 그 동안 최대의 경제 파트너였던 중국 국가자본을 대체하여 서방 중심의 사적 자본이 많이 들어 왔으나 미얀마 인들의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경제생활에 대한 불만이 동반 폭발했기 때문이고 그 책임은 아웅산수치 정부에 있다.

셋째, 지금 실시되고 있는 제3차 헌법제정 과정에서는 미얀마 내부의 여러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그 동안의 안정유지세력으로 수많은 소수민족과 전투와 타협을 계속해 온 군부의 존재를 인정하여 서구세력이 지원하여 노벨상까지 받게 한 아웅산수치의 ‘소위‘ 민주화진영이 서로를 인정한 것이다. 미얀마의 친 서방세력인 아웅산수치와 민족자주세력인 군부 세력이 합의하여 국민투표에 회부한 미얀마 헌법은 국민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발효되었으나 아웅산수치 측은 일단 2010년의 투표를 보이콧했다. 그 헌법 하에서 2015년의 총선에서 승리하여 아웅산수치는 국가고문에 취임했고, 본인 스스로가 대통령은 자신의 허수아비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 헌법 하에서 2020년 11월의 선거를 관리한 아웅산수치 정권의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선거관리를 하지 않았고, 서방(영미)의 주류미디어와 심지어는 미국이 운영을 주도하는 소셜 미디어까지도 군부의 언론표현을 제지하고, 아웅산수치 정부를 민주정부로 추켜세웠다.

넷째, 독실한 종교 세력은 아웅산수치의 백색독재 내지 자본독재에 항거하거나 속지 않았다. 독실한 상좌부 불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라카인 주(옛 아라칸 주)에는 수백 년 전에 이주한 인도아리안 어계의 무슬림인 로힝야 족이 1940년대에 아웅산 장군의 무장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벵골로 이주했다가 영국에 의해 다시 이주해 온 민족들이다. 이들과 아라칸의 불교도 간에는 그 동안 많은 충돌이 있었고, 유엔이 개입하여 호힝야를 중국의 파룬궁처럼 핍박받는 집단으로 부각시켰다. 유엔은 우리나라 휴전선에서 한국정부의 고위관리도 북한과 자유로운 접촉을 가로 막고 있듯이, 미얀마에서는 유엔의 난민단체나 어린이 인권보호단체 등을 동원하여 로힝야 족을 억압하는 라카인 주의 불교도와 미얀마 당국을 악마화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유엔의 이름으로 벌이는 일이 모두 선한 일인가? 1940년대 처칠 수상과 루스벨트 수상의 대 독일 전략 구상에서 만들어진 기구이지만 그 이름으로 행해진 일들 중에는 다수의 이름으로 벌이는 전쟁이나 분쟁도 상당히 많다.

많은 행정단위가 투표에서 배제된 미얀마 북부의 카친 주에 살고 있는 다수 민족은 카친 족이다. 카친 족은 90% 이상이 독실한 기독교도들이다. 이들은 영국과 미국에 망명정부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 이번 선거의 불공정한 선거구 획정이나 선거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선거에 불참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주 외에도 여러 주와 도(지역)에서 선거가 거부(취소)되었고, 특히 군부가 차지하는 25% 의석에 대한 지방별 할당에는 엄청난 부정과 비리가 있다.

2. 이제 본격적으로 이번 선거 결과를 예시하면서 설명하겠다.

첫째, 2020년 6월 29일, 연방선거관리위원회(UEC)는 상원인 민족의회(Amyotha Hluttaw)의 선출직 의석 168석, 하원인 인민의회(Pyithu Hluttaw) 선출직 330석(498석), 주와 지역별 군부 지명직 의원 수 할당, 주(state)와 지역(region)의회의 선출직과 29명의 민족문제 장관 수 배정내역도 발표했다.

이 표는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공표한 자료에서 누락한 군부지명(***표시) 의원수를 취재자(필자)가 계산한 것이다. 표에서 알 수 있듯이 군부지명 의원의 수는 전체적으로는 헌법 규정 상의 정원인 161명을 15명이나 초과하는 176명이나 되고, 주나 지역별로는 상원과 하원 의원의 합산만으로도 각 주(state)와 지역(region) 의원의 수를 넘는 경우도 14개 주와 지역 중에서 5개나 된다. 군부 지명 의원 수로 배정해야 할 4분의 1(25%)의 의원 수도 주와 지역에 따라 그 비율의 편차가 매우 심하다.

예를 들어, 의원 총수 34명 중에서 군부 지명자가 라카인 주는 의원 총수 34명 중에서 5명(14.7%), 카친 주는 36명 중에서 6명(16.7%), 만달레이 지역의 의원 총수는 56명 중에서 8명(14.3%)에 불과하지만 양곤 지역은 90명 중 33명(36.7%), 샨 주는 110명 중 43명(39.1%), 사가잉 지역은 74명 중 25명(33.8%)이 할당되었다.

아웅산수치가 속한 정당인 국민민주연맹(NLD)에 가담한 군부 출신은 틴우(Tin Oo. 1927년생)대장이 있고, 그를 따르는 군부세력도 주나 지역(도) 별로 상당히 있다. 틴우는 1946년 2월 입대하여 1974년에 버마 국군총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1974년 우탄트 장례식을 둘러싼 학생시위를 유형 진압했고, 카렌민족동맹을 비롯한 동북부 여러 소수민족과 버마공산당을 유혈 진압했으나 부인이 엄청난 뇌물을 수수하여 1976년 해임된 부패분자이다.

표1의 붉은 핵 수치는 필자가 선관위 할당표를 근거로 계산한 수치이다. 이 숫자만 봐도 이 선거가 주먹구구조차 틀린 엉터리 선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UEC는 또한 2020년 10월 16일과 2020 년 10월 27일에 총선이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취소된 선거구도 발표했다. 선거는 15개 읍(township)에서 전면 취소되고, 41개 선거단위에서 부분적으로 취소되었다. 선관위는 취소 발표는 주민 입장에서 보면 투표 거부로 볼 수도 있고, 선거구 박탈로 볼 수도 있다. 3,700만 유권자 중에서 200만 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거부했거나 투표하지 못했다. 한국의 제헌의회 선거에서 1% 전후의 제주도민이 투표 거부(결과적으로 선거 취소)했기 때문에 4·3이라는 엄청난 후과가 벌어진 것을 기억하시라.

개표 부정에 대한 자료나 정보는 아직 입수하지 못했지만 헌법상 절차에 따라 결정된 정권 수임기관인 군사행정위원장을 맡은 라잉(Hlaing)장군은 1년의 기간 안에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표2. 선거가 전면 취소되거나 부분 취소된 선거구와 지역(취소는 거부로 볼 수도 있고, 선거권 박탈로 볼 수도 있다.)

전면 취소된 선거구

• Rakhine State의 9개 읍(township) ; 17개 읍 중 52.9%.

• Shan State의 6개 읍(township) ; 전체 읍 수는 취재 부족.

부분 취소된 선거 단위

• Bago Region의 2개 읍과 42개 면(village-tract)

• Chin주의 1개 읍과 94개 면

• Kachin주의 11개 읍(총 18개 읍)과 192개 면

• Kayin주의 6개 읍과 53개 면

• Mon주의 1개 읍과 1개 면

• Rakhine주의 4개 읍, 15개 구(Ward)와 130개 면

• Shan주의 16개 읍, 8개 구와 130개 면.

소계 ; 41개 읍, 21개 구, 642개 면

3. 끝으로 미얀마의 많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스님과 불교도, 목사와 장로집사들을 만나, 대화한 여행 작가로서의 간주관적 해석을 덧붙이겠다. 라카인 주는 로힝야 인과 불교도의 갈등으로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불교도가 아웅산수치 정권에 대한 반정부 감정이 강하고, 옛 버마 왕국의 수도인 만달레이는 군의 요충지로 많은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카친 주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카친족(Jingpo people/중국어 景頗族경파족)은 대부분이 기독교인(현지에 정착한 침례교도 중심, 안식교는 침례교에 밀리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으로 지식의 폭이 넓고 의식의 수준이 높으며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이후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서방 외세에 의존하는 아웅산수치 정권보다는 야당인 군부지지 성향이 강하고 인종적으로 중국 55개 소수민족의 하나로 운남성에 이 민족의 자치현이 있다. 친중 성향이 강한 편이지만 정부쪽 군경으로 일하는 카친 족이 많다. 카친 족의 얼굴 모습은 우리 한국 사람과 아주 비슷하고 이 주 내에서도 다른 민족보다 비교적 부유하다.

반면에 오랫동안 수도였던 양곤과 그 부근 지역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윤택하나 서구 문화를 동경하고 지향하면서 외국자본에 크게 의존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샨 주는 미얀마 군부가 소수민족 정책의 일환으로 유럽인들에게 배운 방식대로 부족별로 편을 가르고 아편 장사의 쌍벽으로 유명한 쿤사(Khun Sa/昆沙. 중국명 張奇夫, 장개석 잔류부대원의 아들. 1934-2007)와 로싱한(Lo Hsing Han/중국명 羅星漢. 현지 중국계 Kokang 족. 1930년대-2013) 간의 대결을 배후 조종하여 무장독립운동세력을 주 내의 남쪽으로 몰아낸 후과로 중국과 태국 등의 해외자본이 많이 유입되어 경제생활이 비교적 향상되었다. 사가잉 도(지역)는 이라와디 강을 사이에 두고 만달레이 도(지역)의 서쪽에서부터 인도 동북부와 긴 국경선을 갖고 있으며, 만달레이 지역에 비해 맹목적 신앙심은 강하지만 빈부 격차가 심하고 정치의식 수준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보였다.

4. 맺음말

선진국 대자본이 사실상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의 쾌속성과 전파능력의 확대로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커뮤니케이션이나 선전을 독점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서비스공급자(ISP)의 성장을 지원하고 블로그 저널리즘을 활성화하여 이제는 불패의 신화가 깨진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웹 미디어가 새로운 미디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절실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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