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징자 운영위원의 글]
누가 나한테 물었다. “절친이 누구세요?”
난 늘 하던 대답을 한다. “나 친구 없어요.”
학창시절 친구들과는 아예 연을 끊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고, 무슨 일이 있을 때 바로 전화하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특별한 용건 없이 연락하고 만나는 그런 한 사람이 딱히 없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혼자 속삭인다.
“윤미향”
나는 늘 윤미향의 절친이고 싶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멀리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바로 달려 갈 수도 없고, 힘들 때 그냥 안아주지도 못하는데 무슨 그런 절친이 있을까. 무엇보다 절친이란 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상대도 그렇게 생각해야지. 그래서 대놓고 말할 수가 없다. 그냥 나 혼자의 바램일 뿐.
그렇지만 누군가가 존경하는 운동가가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다.
“윤미향”
그 통찰력과 판단력, 실천력 게다가 인품까지. 나보다 7살이나 어린 윤미향의 판단, 윤미향의 실천을 따라온 20년이었다.
“언니, 우리 박물관 지으려고 하는데, 언니가 해외건설위원장 해 줘야겠어”
그 전화를 받은 것이 2003년말. 윤미향을 처음 본 건 1992년이었지만 본격적으로 활동을 함께 하게 된 것은 이 전화를 받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설에 해외건설위원장으로서 참여하게 된 이후부터였다.
그 후에 있던 일들이 수없이 떠오른다. 그 일들을 다 쓸 수도 없고 쓸 필요도 없겠지만, 가장 인상 깊이 떠오르는 일을 하나만 적어 본다.
2015년초쯤이었을 것이다. 와다 하루키가 윤미향을 초청해서 일본에서 함께 해결을 위한 움직임을 만들자고 제안해 왔다. 우리는 망설였다. 한일 정부간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 관련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와다 하루키는 일본정부 쪽에 인맥이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 국민기금 때 사연들을 생각한다면 윤미향에게는 당연히 부담일 수 있다. 우리는 판단 못한 채 이 제안을 윤미향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윤미향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갈게. 와다 하루키든 누구든 그것이 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야지. 해결을 위해서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뭐든지 할게.”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해 말 그대로 한몸 바쳐온 이 여성의 각오와 헌신을, 와다 하루키는, 그리고 일본정부는 결국 배신했다. 2015한일합의 직후인 2016년 1월 4일, 정대협 사무실을 찾았을 때 우린 서로를 부등켜안고 엉엉 울었다.
언젠가는 보내야 한다고 알고 있었다. 그동안 그런 생각을 하는 기회가 종종 있었으니까.
처음에 그런 가능성을 상상했을 때에는 너무 무서웠다. 당시는 윤미향 없이 일본에서 운동해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같이 그만둬야지 했다.
다음에 그런 가능성이 시사됐을 때에는 너무 싫었다. 왜 윤미향 없이 이 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했다. 그래서 나도 같이 떠나야지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윤미향은 말했다.
“나는 평생 재야 활동가로 있고 싶어”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 또 아쉽고 안타깝고 죄책감마저 느꼈다. 더 큰 물에서 활동해야 할 사람인데, 더 이상 붙잡으면 안 되겠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이번 결정을 알게 된 순간, 나는 진심으로, 무조건 지지 응원할 수 있었다. 우리가 붙잡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 있겠지.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꼭 해 낼거다. 자신이 가진 힘과 자질에 맞는 곳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미향이 없어도 나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정의연 식구들 보면 믿음직하고, 김복동의희망 친구들 보면 따뜻하다.
윤미향이 없어도 할머니들 뜻을 함께 이어갈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외롭지도, 불안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윤미향은 다 준비를 해 놓았구나. 남을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게, 평생 이 마당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하면서, 한편에서는 자신이 떠나더라도 우리가 충분히 운동을 계승할 수 있게 주도면밀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다 준비를 해 놓고 가는구나.
역시 대단하다.
그런데 불만도 있다. 이 기회에 말해 놔야지.
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일본에서,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 누가 힘들다고 하면 꼭 구해 주려고 애쓴다. 마치 지구와 전 인류를 구하려고 하는 것처럼.
그러지 마. 미향아. 네가 가진 힘은 알겠지만 그래도 전 인류를 구할 수는 없다.
책임감이 너무 강한 게 탈이다. 사실은 나도 책임감이 무척 강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봐도 너무했다.
이제 우리를 걱정하지 마. 책임감도 느끼지 마, 걱정하지 말고 도움만 받아 줬으면 좋겠어. 언젠가 한가하게 여행 가자. 절친으로서.
아, 그리고 올해 초에 얘기했지? 한일 여성의원모임 만들자고. 이런 식으로 약속을 지켜 주려고 하네. 약속 잘 지켜 주는 것. 그건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안다. 윤미향이 어디에 자리를 옮겨도 할머니들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할 거라는 것을. 그러니까 앞으로도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윤미향 화이팅!
[방청자 운영위원의 글]
윤미향대표에게 보내는 말
윤미향대표, 30년간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 활약의 장소를 국회에 옮긴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드디어 이날이 왔다고 감개 깊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온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놀라지 않습니다.
대표가 정의연을 떠나 힘세게 발걸음을 진척시키는 것은 할머니들의 소원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번에 윤미향대표가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의 현장에 이미 뒤에 이어지는, 동지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미향 대표를 박수로 보내는 것과 동시에, 뒤를 맡겨진 멋진 후배 동지들에게도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는 이미 일본정부에 의한 피해자에의 사죄와 배상의 실현것만으로 끈내는 문제가 아닙니다.피해자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전시성폭력이 없는 세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이며,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의 실현입니다.
일상생활속에 숨고 있는 여성차별이나 폭력,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물건처럼 취급하고, 소비하는 문화나 폭력이 만연하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을 바꾸어 가는 힘센 발걸음을, 앞으로 국회라는 자리에서 많은 여성들과 함께 힘세게 진척시켜 주세요.
학생 시절의 군사독재와의 투쟁이나, 피해자와 함께 걸었던 시기를 통해서, 사회의 민주주의나 저변에 사는 사람들의 괴로움, 분단 사회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껴 온 윤미향대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필 달성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 저럼.
그리고 그 따뜻한 감수성으로 사람들에게 바싹 달라붙고, 아픔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그 정의를 구하는 강한 의사로 분명 고난을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윤미향대표의 결단을 듣고, 나도 일본 땅에서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게, 일본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힘이 되기 위해서, 계속 열심이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